생각

[poem] 한용운 - 이별

마법부리는곰 2009. 3. 3. 23:50
아아 사람은 약한 것이다, 여린 것이다, 간사한 것이다.
이  세상에는 진정한 사랑의 이별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죽음으로 사랑을 바꾸는 님과 님에게야, 무슨 이별이 있으랴.
이별의 눈물은 물거품의 꽃이요, 도금한 금방울이다.

칼로 베힌 이별의 「키쓰」가 어데 있느냐.
생명의 꽃으로 빚은 이별의 두견주(杜鵑酒)가 어데 있느냐.
피의 홍보석(鴻寶石)으로 만든 이별의 기념반지가 어데 있느냐.
이별의 눈물은 저주의 마니주(摩尼珠)요, 거짓의 수정이다.

사랑의 이별은 이별의 반면에, 반드시 이별하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이 있는 것이다.
혹은 직접의 사랑은 아닐지라도, 간접의 사랑이라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별하는 애인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것이다.
만일 애인의 자기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면, 무궁을 회전하는 시간의 수레바퀴에 이끼가 끼도록 사랑의 이별은 없는 것이다. 
아니다 아니다. 「참」보다도 참인 님의 사랑엔, 죽음보다도 이별이 훨씬 위대하다.
죽음이 한 방울의 찬 이슬이라면, 이별은 일천 줄기의 꽃비다.
죽음이 밝은 별이라면, 이별은 거룩한 태양이다.

생명보다 사랑하는 애인을 사랑하기 위하여는, 죽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위하여는, 괴롭게 사는 것이 죽음보다도 더 큰 희생이다.
이별은 사랑을 위하여 죽지 못하는 가장 큰 고통이요, 보은이다.
애인은 이별보다 애인의 죽음을 더 슬퍼하는 까닭이다.
사랑은 붉은 촛불이나 푸른 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먼 마음을 서로 비치는 무형(無形)에도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애인을 죽음에서 웃지 못하고, 이별에서 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애인을 위하여는 이별의 원한을 죽음의 유쾌로 갚지 못하고, 슬픔의 고통으로 참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차마 죽지 못하고, 차마 이별하는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는 것이다.

그러고 진정한 사랑은 곳이 없다.
진정한 사랑은 애인의 포옹만 사랑할 뿐 아니라, 애인의 이별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고 진정한 사랑은 때가 없다.
진정한 사랑은 간단(間斷)이 없어서 이별은 애인의 육(肉)뿐이요, 사랑은 무궁이다.

아아 진정한 애인을 사랑함에는 죽음의 칼을 주는 것이요, 이별은 꽃을 주는 것이다.
아아 이별의 눈물은 진이요 선이요 미다.
아아 이별의 눈물은 석가요 모세요 짠다크다.

한용운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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